다시 찾은 백령도에는
우선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 할 것 같다. 천안함이 인양된 지가 언젠데 이제야 백령도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만성 피로 증후군 때문일까. 머릿속에서 퇴색되어 가는 기억을 붙잡지 못해 아쉬워하면서도 막상 기록을 남기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워낙 논란이 컸던 사건인데다 지금까지도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고 있으니 어떤 말을 남긴다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게다. 그래도, 한달 넘게 우리 사회를 마비시키다시피 했고 우리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로 남게 될 사건이다. 그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느꼈던 단상만이라도 정리해보고 싶다.
지난 2007년 10월 이후 2년 반만에 다시 찾았다. 그 당시에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백령도 현지의 분위기를 취재하러 왔었다. 당시의 화해 무드 속 취재와는 달리 이번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섬을 밟아야 했다. 실종자가 한명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존가능 시간도 얼마남지 않아 급박한 현지의 분위기가 도착하자마자 여실히 느껴졌다.
용기포항. 외지 사람과 물건의 출입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지다 보니 경계 근무를 늦출 수 없는 곳이다. 취재진에서부터 군 당국 관계자와 인양업체 직원, 자원봉사자들까지 쉴 틈 없이 드나들면서 이번 사건의 여파를 가늠하게 했다. 나 역시 숱하게 이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하루의 주된 일과는 배를 타는 것이었다. 배를 타고 현장의 수색 상황이나 인양 작업 상황을 둘러보는 것. 사실 백령도에 왔지만 실제 수색, 인양 작업은 바다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눈 앞에서 상황을 볼 수가 없다. 때문에 배를 같이 타고 나가게 해달라고 군 당국에 조르는 게 날마다 기자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침몰한 곳. 빨간 부표가 그 위치를 알리고 있다. 지금은 선체가 모두 인양됐지만 아직도 백령도 앞바다에는 상흔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아무 대답 없는 바다 아래로 그들의 넋이 잠들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바다 한 가운데 현장에 도착하면 현재 상황을 취재하고 화면을 촬영하고, 거기다 라이브로 현장을 연결하기도 했다. 때문에 높은 파도에다 많은 업무까지 밀려와 우리를 울렁거리게 했다. 특히 카메라 기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큰 탈 없이 무사하게 방송한 것에 대해 우리 카메라 기자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싶다.
현지의 유명한 사곶 냉면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 현지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현지인과 다름 없어졌다. 한 카메라 기자는 백령도 어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차림새다.
한 달 가까이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아지트가 된 사무실이다. 용기포에서 멀지 않은 KT 백령지사 사무실인데 다행이 빈 사무실이 있어서 빌려 사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열악한 현지 상황 탓에 제대로 된 여건에서 취재하긴 힘들다. 그래도 다행히 인심 좋은 지사장님 덕에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 취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백령도의 명소인 용틀임 바위. 용이 몸을 비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라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천안함 침몰 위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멀리서 수색 작업을 하는 배들이 보인다. 실종자 수색을 벌이다 숨진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날, UDT 전우회원들이 이곳에 올라 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희생자 가족, 구조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한 준위 가족, 금양호 선원 가족들의 고통이 가장 크겠지만, 백령도 주민들도 빼놓을 수 없다. 한동안 까나리 조업을 재개하지 못했던 어민들과 관광객이 뚝 끊긴 두무진 상인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 앞에 대놓고 얘기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 이번 사태로 최전방 지역의 안전을 걱정해 이사를 고려하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백령도에서 함께 부대낀 해군 공보장교. 처음에는 쑥스러움이 많아 인터뷰를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졌는지 매일마다 카메라 앞에서 브리핑을 했다.
이번에는 평택으로 넘어가서. 해군2함대 앞 휴게실 건물에 마련된 기자실. 먹고 자고 기사 쓰면서 며칠을 이곳에서 부대꼈다. 열띤 취재 경쟁만큼이나 기자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젊은 넋들을 빼앗긴 2함대에도 봄은 오는가 보다. 늘 추위에 떨며 취재해서 겨울이 계속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새인가 벚꽃이 폈다.
2함대 체육관 앞에 천막이 들어서고 빈소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빈소와 이곳 사이에 가로막힌 철조망처럼 희생자들과 우리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단절감이 느껴졌다. 단절감.. 이 단절감은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 더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듯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0.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