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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칼럼

촛불집회 속에서 생각해 본 것들

 

해당 분야 전문가의 글을 통해 오늘을 이해하는 혜안을 얻는다.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죽음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안녕이란 말도 못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자각 때문인데, 그러면서 혹 상처 줬던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했는지, 호의나 은혜를 입은 분들께 고맙다고는 했는지를 살피게 되고, 가까운 사람들에겐 당신이 옆에 있어줘서 내가 얼마나 든든했는지를 잊지 않고 말하고, 늘 좋은 일만 있진 않았지만 삶이 외롭고 고독하지 않았던 건 당신 덕분이라는 표현도 자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극심한 고통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인간의 운명이 얄궂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무엇 때문에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알게 될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공동의 노력을 어떻게 기울여야 하는지를 두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게 될까. 평화롭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 타인에 대해 좀 더 관용적이고 부드러운 시민성을 갖게 될까. 오늘의 이 비극이 우리로 하여금 교훈을 얻게 하면서 더 나은 시민적 삶, 가치 있는 인생을 소망하는 계기가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좀 더 말해보라 해도 희망적인 예측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앞선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변화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일차적으로 정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치란 시민 개개인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공동체라고 하는 ‘공통의 조건’을 좋게 만드는 일을 과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관료제가 공익을 위해 제대로 기능하는지를 관장하는 일도, 시장체제가 독점적 사익 추구의 사냥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효과적인 제도와 예산을 뒷받침해주는 일도 민주주의에서라면 정치의 역할을 통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집권당이 그런 과업에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면 야당을 통해 견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다양한 결사체들이 움직여 시민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모두 다 민주정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권과 사회운동 진영을 포함해 어디를 둘러봐도 변화의 가능성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또다시 하게 되어 있는 말과 늘 하던 대로의 전형적인 행동을 반복하면서 누군가를 향해 증오와 규탄, 분노의 언어를 앞세우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분위기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동안 견디기 어려웠던 일은, 두 정부와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동료 시민들이 보였던 과도한 공격성과 노골적 적대감을 마주할 때였다. 두 정부와 두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의견은 다를 수 있고 지지 정당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상대에 대해 함부로 말할 권리까지 가질 수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판단은 달리할 수 있지만 인간적 선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적 시민들 모두 비극적 죽음을 가슴 아파하며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점마저 의심하고 부정하는 일은 자신의 영혼만 상하게 만든다. 박근혜 정부를 궁지로 몰려는 열정이 지나쳐서 악마화하는 일을 쉽게 해버리면 변화는 없다. 이번에는 어찌어찌해서 그런 공격이 효과를 보았다고 치자. 또 어찌어찌해서 다음번에는 야권이 집권하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다. 증오의 정치 언어는 역할만 바뀌어 이제 보수 쪽에서 들고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반복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사이 이런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의 이탈은 늘 수밖에 없고, 노력 없이 대가 없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야당에 표를 주느니 기권하겠다는 유권자만 더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든 야권이든, 여권과 보수적 시민집단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잘해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싸웠으면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는 사회통합과 병행할 수 있다. 전쟁이 아닌 평화와 공존, 설득의 가치가 더 호소력을 갖는 유일한 체제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2014.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