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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소년

파리이야기9 - 파리에서의 단상들

 

파리 등 유럽의 도시를 걷다보면 우리에겐 부족한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수시로 마주하게 되는 공원과 광장, 조용히 산책할 수 있는 강변,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 등등. 자연스럽게, 차를 타기보단 걷고 싶고 실내보단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게 만든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공원에서, 거리에서, 다리 위에서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노래하면서 자유와 여유를 만끽한다. 그래서 유럽의 도시들은 기계나 시설보다 사람을 위해, 집단의 편리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디자인됐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국의 도시는 급격한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효율성과 경제성이 강조돼다 보니 자연과 사람의 냄새를 잃어버렸다. 앞마당과 너른 마루를 끼고 살던 여유, 그림에서도 강조되던 여백의 미는 우리 삶에서 더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심에 약간의 공간이라도 생기면 어느새 수익성 높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선다. 강 주변은 고속화 도로가 차지하고 있고, 다리도 차량과 전철에 양보한 지 오래다.

 

 

물질적 풍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최근 들어 우리 사회도 삶의 여유나 친환경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빌딩 숲 사이로 공원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도 차량에게 빼앗겼던 1층을 공원과 편의시설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서울시에서 야심차게 준비해 선보인 광화문 광장을 봐도 그렇다. 차로를 좁히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흉물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세종대왕 동상과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 대신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둘 생각은 왜 못했을까? 매끈한 석재 바닥 대신에 조금 울퉁불퉁하더라도 흙길을 만들고 듬성듬성 풀이 자라게 할 생각은 왜 못했을까?  

 

광장조차도 질서와 정돈을 중시하고, 온갖 정보가 담긴 조형물을 통해 시민들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주입해 계도하려 하는 게 여지없이 관(官)의 속성을 드러낸 듯하다. 시민들에게 한 모금의 자유와 한 줌의 여유를 베푸는 센스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태어난 본성만큼이나 자란 환경이 중요하듯 공간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간을 바꿔서 쓰레기 투기를 줄이고 범죄율을 낮췄다는 조사 결과가 공간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공간이 사람들에게 자유와 여유를 제공해 개성과 창의성을 자극하는지,

또 자연과의 교감과 타인과의 공존을 강조하는지, 혹시 우리의 공간이 단절과 획일성, 배타성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 지 고민해볼 일이다.

 

 

그리고 파리 여행의 마지막 날, 지저분함과 불편함 속에서도, 이곳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것은 잘 보존된 파리의 수많은 문화재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