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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꽃'

다섯 번째 꽃 - 스타벅스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꽃이 된 것처럼, 대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알고 있다지만 개념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면 그 대상은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타인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다. 타인과 소통하는 기본은 나 자신이 먼저 여러 사물과 대상들을 곱씹어 정의하는 것이란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물과 개념, 가치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시골 촌놈이었던 제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스타벅스에 가본 건 2000년 가을이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와 짝사랑했던 아이 손에 이끌려 간 곳, 스타벅스 1호점인 이화여대점. 그땐 정말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뜻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이름들로 가득 찬 메뉴판에, 크림을 얹을 건지 말 건지, 시럽은 어떻게 할 건지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하는 점원은 그녀 앞에서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죠. 또 혼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모습도, 커피숍은 소개팅을 하거나 수다 떠는 장소로만 알고 있던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이젠 주말이면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책 읽고 공부하는 게 일상의 휴식이자 작은 행복이 되었죠. 그 만큼 우리 사회에 스타벅스가 곳곳에, 그리고 깊숙히 자리잡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히 '별 다방 전성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스타벅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얘기를 먼저 해보죠. 저는 책 읽기 좋은 분위기를 먼저 꼽습니다. 넓은 매장에 시끄럽지 않은 음악, 어둡지 않은 조명, 스타벅스만의 아늑한 분위기가 책 읽을 맛을 더해 줍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거기다 커피맛에 둔한 저에게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자극적이지 않고 맛있습니다. 거기다 카페인에 민감한 저를 위해 아주 작은 short부터 카페인 중독자를 위한 venti까지 다양한 사이즈를 판매한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데는 스타벅스만의 브랜드 파워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브랜드에 나도 참여하고 있다는 강한 소속감을 만든다는 거죠. '애플'처럼 말입니다. 단순히 커피를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소비하고 때론 과시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할까? 사실, 스타벅스가 대중화된 지금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과거에만 해도 스타벅스를 들고 다니면 '지적이고 전문적인 직장인'의 이미지를 준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스타벅스가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브랜드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저도 해외에 나가면 스타벅스 매장에서 그 도시 이름이 새겨진 머그잔을 사곤하는데, 푸른색 '사이렌' 로고가 그려진 머그잔·티셔츠·일기장은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식품산업을 문화산업으로 변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럽인들의 다양한 커피 취향을 미국에 가져왔고, 단순히 커피 마시는 곳을 넘어 문화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매장에 흐르는 음악을 선곡하고 새로운 저자와 가수도 발굴해 매장에서 소개한다니 가히 엔터테인먼트 회사라 불릴 만합니다.

 

 

 

 

또 지금은 커피숍에서 혼자 노트북 작업을 하거나 공부하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지만, 실은 스타벅스가 무선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커피숍 문화를 선도한 셈이죠. 커피숍에서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개인적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 선두 주자라는 겁니다. 특히 혼자서 밥 먹거나 커피 마시거나 영화 보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던 우리나라에 '혼자놀기' 문화를 전파한 공로는 인정해줄 만합니다.

 

 

 

 

노동과 환경을 생각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해 약소국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한다는 점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된장남, 된장녀들에게도 약간의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각종 사회운동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RACE TOGETHER' 캠페인이 좋은 예이죠. 물론 일부 직원이 오히려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언행을 해 반발 속에 캠페인이 중단됐지만, 스타벅스에 모든 책임을 물어서 인종차별 캠페인 자체까지 비난당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직원의 행위와는 별개로, 인종차별은 개인과 기업, 국가가 모두 나서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다국적기업이 그러하듯, 결국 스타벅스도 세계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스타벅스는 각 나라의 다양성보다는 동질성에 더 기여할 것이고, 우리 마을의 특색 있는 문화와 작은 커피숍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스타벅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작은 동네마저도 국내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의 전쟁터가 된 지 오래이긴 합니다. 그래서 스타벅스를 즐기면서도 가끔은 개성 있고 특색 있는 카페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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