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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꽃'

네 번째 꽃 - 개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미와 용법 등이 변한다. 심지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는 찾아볼 수 없고 전혀 새로운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나 표현들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의미가 혼재하면서 같은 용어를 놓고도 서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의사 소통에 문제가 생기고 심한 경우에 오해와 불신을 낳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단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물론 내가 곱씹어 판단한 정의가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 단어를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안다면, 개념에 대한 토론도 가능할 것이고 서로간의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개념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이다. "유비쿼터스의 개념이 뭐지?"가 예가 될 수 있는데, 간단하게 '뜻'이나 '의미'로 고쳐 쓸 수 있다. 철학과 사회학에서 말하는 '개념'은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용법에 대해서만 논의하도록 하자.

 

우리가 일상에서 '개념'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자주 '없다'라는 부정어와 함께 사용해왔다. "걔는 아직 어려서 돈에 대한 개념이 없어." "사춘기 전에는 성(性)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지." 재밌는 것은 개념의 본래 의미에서는 선과 악,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이 배재돼 있다는 것이다. 돈이나 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은 어리거나 미숙하다는 의미지 그것 자체가 옳고 그름을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 없다'라는 용어는 단연 화자가 대상의 가치를 판단하는 말이다. "걔는 개념이 없어. 아버지 앞에서도 담배를 피더라고." "초상집에 이런 야한 옷을 입고 나타나다니 넌 참 개념이 없구나." 이런 예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사물의 의미'라는 뜻을 넘어서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반드시 알고 지켜야 할 어떤 규칙, 예의나 상식'으로 의미가 확장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최근에는 '개념'의 용법과 의미가 더 넓어졌다. '없다'라는 부정어뿐만 아니라 '있다'라는 긍정의 의미로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좋은 예가 바로 한 자동차회사의 광고다. 가수 이적이 말한다. "개념 시구는 못 던지고 개념 커플은 물 건너 갔고 차라도 개념 있게 타려고요. 000 하이브리드는 40리터로 서울, 부산도 왕복하니까, 연비 참 개념 있다." 개념이란 단어가 시구, 커플, 차, 연비라는 명사를 폭넓게 수식하면서 좀 무리하게 사용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최근 '개념'의 용법을 잘 보여주는 예다.

 

눈여겨 볼 것은 '개념 없다'의 개념과 '개념 있다'의 개념은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개념 없다'고 말할 때 '개념'은 '대다수 사람들이 따르는 상식'이지만, '개념 있다'고 말할 때는 기본적인 상식이란 뜻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즉 대다수 사람들은 아직 하지 않고 있는, 남들보다 조금 앞서나가는 의식과 행동을 말한다. 위의 광고도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매함으로써 남들보다 앞선 친환경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소유와 편리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요즘은 '개념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종이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머그잔을 가져오고 몇층 정도는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사람, 무더위가 지속돼도 환경에 부담을 덜 주고 싶다며 에어컨 구매를 꺼리는 사람,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작은 돈이라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사람. 이런 '개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그리고 나도 '개념 있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개념의 동의어는 누군가(타인, 지구)에 대한 '관심과 배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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