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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꽃'

세 번째 꽃 - 스토리텔링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꽃이 된 것처럼, 대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알고 있다지만 개념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면 그 대상은 나에게 의미 있는 '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타인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다. 타인과 소통하는 기본은 나 자신이 먼저 여러 사물과 대상들을 곱씹어 정의하는 것이란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물과 개념, 가치의 꽃을 피워보고 싶다.


 


요즘 스토리텔링 화법과 작문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인데, 사전적 정의는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라고 한다. 더 복잡한 정의도 많지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미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TV 광고가 대표적인 예다. 상품의 기능을 홍보하고 정보를 전달하기에 바빴던 과거의 광고에 비해 요즘 광고들은 서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상품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피로 회복'이라는 박카스의 기능적인 면을, 이 시대 청년과 연인, 가족의 '정신적 피로'에 대한 스토리와 접목해 시청자들의 감성적인 면을 건드린다.

 

 

또 '클래시 오브 클랜'이란 모바일 게임은 영화와 같은 흥미진진한 재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영화배우 리암 니슨을 활용했다. "니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꼭 복수하겠다'는 그의 독백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게임에서 패한 뒤 상대방에서 복수하겠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허탈함에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사실 스토리텔링은 거창한 게 아니다. 일상 속의 개인적인 예를 들고 싶다.

 


몇년 전, 호주 시드니를 일주일 간 여행하면서 새로 산 캠코더로 대여섯 시간 분량의 영상을 담아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찍은 화면들을 봤는데 시드니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지만, 그 뿐이었다. 워낙 긴 분량인데다 돌아다니면서 막 찍은 것이라 두 번째 볼 때는 쉽게 지루함을 느꼈다.

 

그래서 영상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동영상 제작에 들어갔다. 영상을 잘라 주제별로 세분화하고, 시간이나 서사적 흐름에 맞게 재배열하고, 마지막으로 주제에 맞는 배경음악을 깔았다. 내 나름대로 여행을 재해석한 것이다. 이틀에 걸친 편집 작업 결과 4~5분 분량의 영상물 5개가 만들어졌다. 완성된 영상을 보면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이랄까. 뚜렷한 목적 없이 촬영된 이런저런 영상들이 어엿한 단편영화 혹은 뮤직비디오로 거듭난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이야기의 힘을 느꼈다. 편집된 동영상은 시작부터 끝까지 특정한 주제를 향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영상을 편집한 행위는 단순히 영상을 잘라 붙인 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 바로 이야기를 심은 거였다. 거기에 적절한 배경음악까지 더해져 이야기의 주제와 목적의식을 더해주고 있었다. 방향성 없이 나열된 영상을 의미있는 이야기로 덧씌워 포장하는 작업. 바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삶의 목적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분주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의미를 더하는 일. 그래서 일기든 블로그든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남기고 각자의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네 삶이 이야기의 옷을 입고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끄는 순간이다. 정말이지 인생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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