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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매체분석

악마를 보는 건 불편하다



습기 가득한 창고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진 연장들, 그리고 비닐에 싸인 채 희미한 숨을 몰아쉬는 여성... 이전에도 잔인한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을 많이 봤지만 이토록 소름 끼치거나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단순히 영상이나 음향효과가 실감나서가 아니다. 그 공포와 불편함의 근원은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개연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TV 뉴스 등을 통해서 부녀자 연쇄살인이나 토막살인을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사건 발생과 결과만 접할 뿐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영화는 사건 발생과 결과 사이에 있음직한 피해자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내면서 보고 싶지 않고 인정하기 싫은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죽음의 순간에 공포에 떨면서 살인마를 상대로 생명을 구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해부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얼마든지 나와 내 가족이 저런 환경에 놓일 수 있고 그런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감정이입되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스크린 속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영화의 내용은 그다지 복잡하거나 구성이 치밀하지 않다. 대부분을 장경철(최민식)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한 지 묘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관객들의 심리를 극한의 원초적인 복수심으로 끌고 가기 위해 악마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장경철은 이렇게 나쁜 놈이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듯하다. 그러면서 수현(이병헌)의 광적인 복수에 대한 심리적 면죄부를 주고 결국 복수 과정에도 관객들이 심정적으로 동참해 일종의 쾌감마저 느끼게 한다. 
 
장경철을 처형(?)하고 혼자 길을 걸어가는 수현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토록 독한 마음을 품고 원하는 복수를 했지만 결국 눈물이 터져나온다. 복수의 허망함이랄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고 심리적으로 파괴된 자아만 남았다. 역시 누군가의 말대로 아직 소중한 것이 남아있다면 지는 것이다. 인생에서 잃을 게 없는 장경철에 비해 여자친구의 가족 등 사랑할 것이 남아있었던 수현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릴러라기보단 오히려 두 인물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다룬 심리 드라마에 가깝게 느껴진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는 여성을 희생양으로 잔인하게 도구화한 것에 대해 불쾌감마저 느꼈으리라. 한마디로 기분 더럽고(?) 정신 건강에 도움이 안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윤리적이고 유익한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닐 게다. 때론 노골적이고 불편하더라도 '괜찮네. 잘 만들었네'라고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나에게는 그런 영화다.


(2010.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