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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매체분석

나의 감성을 자극한 사람, 당신이었군요



누구나 한번쯤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작업'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때론 상대방 앞에서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하고 깜짝 놀랄 이벤트를 위해 며칠을 준비하기도 한다.

꼼꼼하고 치밀한 편이었던 나는 (물론 지금은 아주 무뎌졌지만) 구애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한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탄탄한(?) 시나리오를 짜고 다양한 설정의 대사까지 연습하곤 했다. 그녀에 대한 사전 조사는 물론이고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접근, 그녀의 주변 사람 구워삼기와 적정한 거리 두기 등 치밀한 설정 속에서 '작업'하던 때가 있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이런 구애 작업을 대신해 결실을 맺게 해주는 서비스 업체다. 요즘 이벤트 회사들도 많고 현대판 중매쟁이라 할 수 있는 결혼정보업체도 많지만, 이렇게 세밀하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작전을 펼치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지고 유치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다 그렇게 유치한 거지 뭐'하면서 쿨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지금 생각하면 유치했던 나의 치밀한 작업들을 떠올리게 해줘서 흐뭇했다.

사실 이런 타인에 의해 조작된 구애 작업은 사기(?) 혐의가 짙다. 하지만 극중 상용의 말처럼 오죽했으면 시라노에게 연애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을까. 작업 기술의 '진실성'은 떨어지지만, 상대방에 대한 감정의 '진정성'은 확보했다고 할까. 작업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절박하고 애뜻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은 감성이 메마른 듯하다. 짜릿했던 연애의 추억도 가물하고 무언가에 설레거나 애뜻한 감정을 느낄 일도 별로 없다. 그저 기계적으로 빠르게 굴러가는 일상에 대한 아쉬움만 느낄 뿐. 그래서인지 드라마는커녕 멜로영화도 안 본지 오래됐는데, 모처럼 학창시절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만난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연애의 감정을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중에 나도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연애조작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