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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매체분석

수신료의 가치, 모처럼 감동으로 전했다


"수신료의 가치, 감동으로 전합니다."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방송한 'KBS 스페셜 통일 대기획'을 보고 모처럼 KBS의 이 홍보 문구에 공감을 했다. 지금까지의 행태와는 달리, 공영방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가지 점에서 훌륭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가 잊고 살지만 중요한 문제인 통일에 대해 획기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갈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 합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1편 '북한 주민 통일을 말하다'는 북한 주민들이 보는 남한과 통일에 관한 이야기다. 비자를 발급받아 중국을 방문한 북한 주민 102명을 심층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제작되었는데, 북한 주민에 대한 설문조사라는 점에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주민은 통일의 또 하나의 주체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번도 이들에 대한 의식 조사는 시도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북한 주민에 대한 조사를 통해 경제난으로 흔들리는 북한의 민심과 그 대안으로서 통일에 대한 갈망이 여실히 나타났다. 북한 정권의 체제 선전과 세뇌 교육 속에서도 주민들은 체제의 실패를 체감하고 남한과 경제적 협력이 필수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정권이 선전한 강성대국에 대한 냉소와 3대 세습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은 분명 고무적인 모습이었다. 또 남한 드라마와 노래들도 이미 체제를 넘어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통일되면 남조선이 잘 살기 때문에 유통도 잘 될 거고 폐기된 공장도 세워질 거고 우리가 남조선에 나가서 벌수도 있고 남조선 사람들이 조선에 들어와서 건설도 해주면 잘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평안북도 안주 주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사상 교육으로 인한 인식의 한계도 없지 않았다. 여전히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고, 천안함 연평도 사건도 남한 때문에 발생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또 통일이 되면 어떤 체제를 원하느냐는 질문에서는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했다. 무엇보다 우려하는 점은 북한이 고립의 길을 걸으면서 주민들이 남한보다 중국을 점점 더 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에 북한 체제가 붕괴되면 중국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가장 친근한 나라는 중국입니다. 왜냐면 총도 안 겨누고 있고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게 일체 다 중국 물건이니까요."
-해주 시민-


2편 '북한을 보는 두 개의 시선'에서는 일관된 대북·통일정책을 위해 우리 사회 통일의식의 접점을 모색했다. 이를 위해 스탠포드대학교, 서울대학교와 함께 국내 최초로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서로 다른 통일의식을 갖고 있는 각계 각층,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모여 1박 2일 동안 토론하고 전문가로부터 객관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는 작업이 계속됐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은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 상대방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점 등을 깨달아갔다. 비록 완벽한 결론은 아니지만, 참가자들은 토론과 교육을 통해 공론조사의 마지막에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

사실 우리사회에서 토론 문화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학교에서는 정답과 오답만을 가르치고, TV 토론을 봐도 의견조율의 장이 아니라 싸워서 이기기 위한 투쟁의 장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론조사는 통일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과 의견 대립을 풀어나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매체들이 자기 진영의 주장만 쏟아내고 편가르기를 조장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이견을 좁히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공영방송의 중요한 의무이자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