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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매체분석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그리고 나의 스물두살

 

"여자들도 군대 가봐야 돼.." 남녀간에 군 가산점 문제 등 군대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정말이지 여자들도 짧게나마 군생활을 해본다면 남자들이 왜 그토록 군 생활에 대해 보상을 받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왜 그리도 군대 얘기만 하면 열을 올리는지 쉽게 짐작이 갈 게다. 그래서인지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은 보복의 쾌감에서 오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거봐, 만만치 않지? 후후'

 

하지만 단순히 보복 심리만 자극했다면 굳이 이렇게 글을 남기지도 않았을 거다.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시간을 꼽으라면 단연 스물 두 살부터 2년여 간 이어진 군생활이다. 나의 개성과 창의성은 집단성과 통일성에 희석됐고,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정신은 계급과 힘의 논리에 순응하며 무릎을 꿇었다. 또 열정적이던 모습은 어느덧 눈치껏 적당히만 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정말 군생활에서 1퍼센트의 장점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에게 이번 '여군특집'은 놀랍게도 새로운 인식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여자연예인들이 입대한 뒤 좌충우돌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군대의 순기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회에서 잘 나가던 아이돌과 주연 배우들이 화장을 지우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또 훈련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느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한다. 그래, 사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군대에선 (이론적으로는) 모두 평등하다. 그렇게 자기만 제일 잘난 줄 알았던 삶에서 동료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깨닫는 과정은 작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런 도전 속에서도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는 모습은 가식으로 가득찬 아이돌에게선 볼 수 없었던 인간적인 감동이다.

 

 

 

국가대표 박승희 선수와는 체력면에서 항상 라이벌이지만, 먹는 건 단연 일등이다. 힘든 훈련 뒤에 폭발적인 식사량을 자랑하는 먹방 이혜리 선생. 지금까지 먹어본 제육 중에 가장 맛있다며 식판을 두 번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해낸다.

 

 

여군특집을 보면서 오래 전 기억을 추억해본다. 비록 TV 화면이지만, 각개전투의 거친 질감과 화생방의 따가운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두렵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던 그 시절. '그래, 내가 그 시절을 지나왔구나.' 문득 극한 훈련의 고통을 이겨내고 싸이코 같은 선임병들의 핍박도 견뎌낸 뒤 아무 탈 없이 전역한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런 훈련을 통해 내 인생을 단련했다면서, 나의 군생활을 미화시켜 본다. 하지만 거짓은 아니다. 정말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군생활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아무리 지랄 같은 직장상사를 만나고 군대 선임병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군생활 처음에 관심병사로 시작한 나, 하지만 이후 당당히 분대장을 달고 간부들에게도 인정받는 내가 됐다. 그런 경험은 어떤 낯선 상황에서도 처음에 조금 미숙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나를 만들었다. 그래, 나의 군생활, 나의 스물 두 살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