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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북카페

정의란 무엇인가



개인간의 자율적인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법은 옳은가? 강제적인 징병제보다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모병제가 더 바람직한 것인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기회만 준다면 정의로운 사회인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 마련이다. 자문하기도 하고 때론 토론을 벌이면서 각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하지만 그 논의는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피상적인 부분만 건드리기 일수다. 좀더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사안을 해부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이 책의 첫번째 미덕은 학창시절 못다한 공부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벤담의 공리주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 그저 '누구의 무슨 사상'으로만 외웠던 도덕과 철학이 실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이 결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나게 현실에 적용해 보여준다. 또 일견 두 관점이 대립된 것으로 보이는 사안도 얼마나 다양한 철학적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체험하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또 각자의 철학과 가치관을 찾아 여정을 떠나게해준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 쟁점들을 보여주고 그것을 어떤 철학적 도구로 들여다볼 수 있는지 알려주지만 결코 어떤 관점이 옳다는 답은 내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저자의 강의가 그러하듯 계속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것이 왜 정의롭고 가치있는지를 스스로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철학과 가치관을 찾아가게 된다. 세상을 다양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관점을 찾아가게 하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요즘 이 책 덕분에 '정의론 신드롬'이 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정의'에 대한 이런 관심에 대해 저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윤리적 문제를 풀어보려는 굶주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무엇을 믿으며 왜 그것을 믿는가를 알고 싶은 욕망이 있으며, 공동체 안에서 좀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던, 옳고 그름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를 건드렸다고나 할까. 사실 부와 소비가 행복으로 치환되고 국가의 목표가 경제 성장으로 정의되는 현대 사회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며 살고 있지만 가끔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슴 속에 잊혀졌던 정의에 대한 자존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한 그의 말은 더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정치라는 것이 사람들을 단지 효율적인 소비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높은 차원의 자유는 '소비자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이다. 시장주의의 압력은 공동체적 삶을 훼손해왔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적인 삶은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삶이다. 시민적 자유는 이 과정에서 획득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핵심이 교역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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