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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북카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기발하면서도 불편한 몇 가지 거래들이 있다. 1박에 82달러를 받고 교도소 감방을 업그레이드해주는 것,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 농장주들에게 사육하고 사냥할 권리를 주는 것(실제로 개체 수가 늘어났다), 시간당 15달러를 받고 로비스트를 대신해 국회 공청회에 참관할 수 있는 줄을 대신 서주는 것,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2달러를 주고 책을 읽도록 하는 것, 생존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생명보험 증권을 돈을 주고 사는 것.

 

마지막 사례를 보자면, 투자자는 말기 환자의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보험료를 대납하는 대신 사망 시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환자의 경우는 보험 증권을 판 돈으로 여생을 편한하고 의미있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어차피 죽은 뒤 나오는 사망 보험금은 자신에게 필요 없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꺼림직한 게 있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험증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환의 죽음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가 사망하지 않으면 보험증권은 종이조각에 불과하고 오히려 투자자는 지속되는 보험료 납입으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우리나라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국정 운영 방향까지 '공정사회'로 만들게 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돌아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과 도덕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다. 지난 책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상 생활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다양한 딜레마적인 상황을 제시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독자들의 관점과 논거를 계속 묻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시장 가치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 파고들어왔다. 심지어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그게 잘못된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장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게 왜 잘못일까?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자원의 가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만을 돕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게 정자, 난자든 이민권이든 자원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분배해 수요자와 공급자의 만족도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불평등'과 '부패'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시장사회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불평등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공정하지 않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고급차와 명품 가방을 못 사는 불평등을 넘어서 주거권과 교육권, 진료권 등 기본적인 권리에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게 문제다. 부패의 경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영역에 시장가치가 매겨지면서 그 본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는 존엄한 인간을 돈으로 거래했기 때문에 그 본래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투표권 거래를 금지하는 이유도,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불평등의 관점도 있지만, 시민의 신성한 권리인 투표권을 훼손한다는 부패의 관점도 작용한 것이다.

 

늘 그렇듯이, 샌델 교수는 시장 거래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 금지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각 사회에서 열띤 토론를 통해 답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 동안 당연하게 돈으로 사고 팔던 것들이 정말 시장 거래에 맡겨도 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시장과 도덕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 토론해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거래되는 날이 올 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팔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도덕적, 시민적 재화는 존재하는가?"

 

문득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하나 떠오른다. 내용이나 시기적인 면에서 이 책의 주제가로 불릴 만하다.

"Show me the money 돈 없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 Give me the money 돈만 주면 뭐든 다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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