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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북카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



대한민국은 이념 과잉의 사회다.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대립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갈등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아니 해결조차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각각의 문제들은 개별적으로 판단되고 논의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틀에서 이해하고 이념적인 바탕 위에서 해석된다. 때문에 총론과 거대 담론에 대한 논쟁만 난무하고 각론으로 진행이 어렵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판단보다 이념과 정서에 기반한 편가르기, 이해와 타협은 변절로 여기고 투쟁과 독선만이 충절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상대를 향해서만 '소통'을 말한다. 정권은 바뀌어도 레파토리는 똑같다. 현 정부가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욕을 먹고 있지만, 실은 참여정부도 '코드 인사', '대통령의 막말' 등이 유행어처럼 퍼지며 소통이 안된다고 욕을 먹었다. 결국 '소통'이라는 용어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아니면 자기 편, 자기 진영끼리의 '소통'이던지.

생각과 이념은 달라도 서로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 폭력이 아닌 민주적인 절차에 대한 합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그런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자기 신념에 대한 독선과 상대에 대한 불인정이 이런 공통의 영역을 갉아먹고 있다.

볼테르의 명언을 인용한 정관용 씨의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이런 당연한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들이지만 실제는 당연하지 않은 현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방송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정관용 씨의 이성적이고 균형감을 잃지 않는 모습을 자주 봐왔던 터라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다.  

우리가 편가르기와 불통의 자세를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그 이득은, 정치적으로 이 대립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만다. 우리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한 이들. 상대를 부정하면서 싸우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이익을 위해 서로 공존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정관용 씨는 우리에게 현명한 판단을 부탁한다. '적대적 공존관계'가 아닌 '건설적 대립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 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 우리 젊은이들은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편이냐 아니냐로 인식한다. 사실 위에 정의를 세울 수는 있어도 정의 위에 사실을 세울 도리는 없다. 나는 신념이 가득찬 자들보다는 의심이 가득찬 자들을 신뢰한다.

-소설가 김훈 (책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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