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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과 북카페

후불제 민주주의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인물과 사상’ 2005년 5월호에서 “유시민은 수의복을 입고 ‘항소 이유서’를 쓰던 때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80년대는 멋 옛날의 얘기가 됐는데도 유 전 의원은 여전히 “바리케이드 앞에 화염병을 들고 서는 심정”으로 정치적 반대파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속세에 찌들어버린 다른 386에 비하면 유시민은 얼마나 순수한가. 그래서인지 정치적 가식 없이 언제나 우리 사회에 상식과 기본을 요구하는 그는 참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아직도 그의 의식이 군사독재시절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표출하는 사회적 분노와 증오를 보면 아직도 역사의 뒤안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특히 이번에 새로 내놓은 책 ‘후불제 민주주의’는 많은 실망과 함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해야 했다. 증오와 분노, 독설과 독선만 가득 찬 글이었으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과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헌헌법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양성평등이 대중적 의제가 되기도 전에 여성들이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노동3권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요지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제헌국회 당시 외부의 힘에 의해 높은 수준의 헌법은 만들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는 얻지 못했다. 따라서 헌법적 가치가 대한민국에 정착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뒤늦게라도 그 값을 치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는 "현 정권과 같은 독재 권력이 들어설 수 있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지금 우리는 고통스럽게 민주주의를 후불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분명 우리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가 체화되지 않았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행태가 여전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나 토론 문화가 빈약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민주의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과 현 시대를 군사독재시절로 규정하는 것은 별 개의 문제다. 그의 규정대로 라면 우리 국민들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대화와 타협을 배우기보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리한 대전제를 만들어 놓고 그는 줄곧 학생운동 시절의 투사로 돌아가 반민주 투쟁을 하고 있다.

저자가 학생운동 시절의 담론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는 현 사회를 바라보는 갈등구조에 나타나 있다. 그가 비판하는 대상은 ‘보수’라고 규정했지만 실상은 ‘반민주’에 가깝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 갈등의 대립구도를 ‘진보 대 보수’로 보지 않고,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처럼 ‘민주 대 반민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현 정권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을 반민주세력 혹은 악으로 규정해버리면 더 이상 토론의 여지는 없어진다. 반민주나 독재는 인정해서는 안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불가피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키려 한다. 어떤 질서든 상관없다. 전제군주제, 개발독재, 천황제, 심지어는 공산당 일당독재조차도 보수가 지키려는 대상이 될 수가 있다. 보수는 이익이 일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단결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에서 갈등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슈들 가운데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미FTA, 남북관계, 교육정책, 세금문제 등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런 정책들이 어디 선과 악, 민주 대 반민주의 문제인가?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는 민주냐 반민주냐를 논하는 대결의 장이 더 이상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 위에서 자율과 경쟁, 평등과 복지 등의 다양한 가치 차이를 놓고 대립하고 경쟁하는 장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민주는 나쁘다’며 헌법적 가치를 들이대면 읽는 사람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지성이 부족해 보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 참모한테 역정을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회와 국가의 품격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대통령은 시중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본다. 정말 대책이 없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그가 참여정부 시절에 그토록 싫어했던 ‘보수언론의 독설’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현 정권을 향해 쏟아낸 독설은, 노무현 대통령을 악의적으로 비꼬고 비난했던 보수언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가 말했듯이 보수언론은 집요하게 참여정부를 공격했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인사권을 행사하면 ‘코드인사’요, 자신의 소신과 정치적 성향대로 국정운영을 하면 ‘소통 불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입에서도 보수언론의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 적어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시로 말이 바뀌는 여느 정치인들과 유시민은 다르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비난하는 그가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 추진은 잊었는가. 용산 참사를 비판하는 그가 참여정부 시절의 평택 대추리 사태는 잊었는가. 4대강을 욕하는 그가 참여정부 시절 지율 스님의 '천성산 도롱뇽' 시위는 정녕 눈감고 있단 말인가. 이들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한때 정책을 집행했던 사람으로서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의 존중이다. ‘후불제 민주주의’인 우리 사회가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존재에 대한 인정, 대화와 타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이해와 가치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고 투쟁하는 태도가 바로 ‘열린사회의 적’인 것이다. 민주적 절차와 타협이 가능할 때만 ‘후불제 민주주의’가 완불(完拂)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는 정치인으로서 미래지향적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적절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든다.”

“사회는 매우 다양한 사상과 신념과 이익이 서로 의존하고 경쟁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 상태가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지적 생태계 또는 이해관계의 생태계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민주공화국은 지적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보장한다.”

그렇다. 그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가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 이처럼 논리적이고 해박한 그가 왜 그런 (내가 보기에는) 무리한 논리를 펼쳤던 걸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야만 자신의 명분이 선명해지기 때문에 그랬을까? 혹시 자신 안의 보수를 감추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실 한미FTA를 지지하고 자유와 경쟁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유시민은 중도나 보수에 가깝다. 학생운동 시절 함께 했던 동료들로부터 지금 보수주의자로 낙인 찍히고 싸가지 없다며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까? 진보주의자들과 자신을 모두 ‘민주주의’의 틀로 묶어놓으면 적(敵)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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