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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소년

파리이야기1 - 10년 만에 찾은 파리

 

 

일주일 간의 일탈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낡고 지저분한 파리 지하철과 그 안을 가득 채운 다양한 피부색의 시선들에 익숙해졌다 싶더니 이젠 꿈이었나 싶다. 어느 새 현실로 돌아와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고 있다.

 

내가 다시 파리를 찾은 이유는 무얼까? 세상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많은 나라들이 나를 유혹하는데 굳이 가봤던 곳을 다시 가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 어느 여행작가는 "파리는 그곳을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도시"라고 했다.

나에게도 파리는 그런 곳이다. 도시 곳곳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가슴 설레고 행복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어떤 이는 "파리가 아름다운 건 파리에 머물 시간이 5일 뿐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어쩌면 나도 파리에 대한 과거의 환상을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다시 찾은 건지도 모른다.  

 

10년 전 배낭여행을 마치고 샤를르 드골 공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나 자신에게 약속했던 게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대학생이던 당시 1, 2년 동안 약간의 자금을 모은 뒤 파리와 런던에 다시 와 정착하겠다고 생각했었다. 젊은 치기라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알바를 뛰며 치밀하게 '유러피언 드림'을 위한 계획을 세웠던 기억이 난다.

 

다시 찾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것도 당초 계획했던 유학생이 아닌 여행객의 신분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세계시민으로 살고 싶다는 나의 꿈이다.

 

고가의 아파트, 고급 승용차, 사회적인 출세는 애당초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저 한국인의 표준화된 일상에 맞춰 남들처럼 가족이기주의에 매몰돼 사는 건 더더욱 싫다. 내가 원하는 건 배움과 경험을 멈추지 않고 넓은 세상을 배워가는 삶이다. 비록 한국이라는 땅에 터를 잡고 살고 있지만, 사고·활동 영역은 지역·국가에 나를 가두지 않고 경계를 넓혀가는 것. 내가 사는 이 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만나고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     

 

그런 세계시민의 꿈을, 파리에 돌아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류의 가치를 위해 고민하던 근대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지금도 무수한 국적의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서로의 경계를 허물어 가는 곳. 그런 곳에서 10년 전 품었던 내 꿈의 끈을 다시 한번 다잡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