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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소년

파리이야기2 - 파리의 하늘 밑

 

수다스런 파리지앵만큼이나 변덕스러운 것이 파리의 하늘이다. 파리에 머문 일주일 동안 모든 날씨를 경험한 듯하다. 이른 봄의 시린 바람부터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까지. 하루에도 비가 왔다 흐렸다 맑았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파리에 도착한 날, 5월인데도 두꺼운 파카에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못 걱정했다. '내가 너무 가벼운 복장만 가지고 온 건 아닌가?' 하지만 다행히 여행 중 날씨들은 인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무더운 날도 있어 민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4계절의 복장을 입고 다니며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란..

 

파리의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저마다의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거리를 누비는 아마추어 작가들은 신이 났다. 다양한 하늘의 모습과 그에 따라 시시각각 조화를 이루는 도시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서 말이다.

 

 

베르사유 정원을 걸을 땐 그야말로 한여름 날씨였다. 미로처럼 만들어진 방대한 정원을 걸을 땐 그저 그늘과 벤치만 찾게 됐다. 정원 숲 속에 군데군데 마련된 노천 카페에선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카페에서 식사를 할까 하다 테이크 아웃 샌드위치가 저렴해 벤치에 앉아서 먹을 생각으로 샀다. 근데 샌드위치가 이름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감탄할 정도였다. '햄 샌드위치'를 주문했는데 빵 사이에 말 그대로 햄만 들었다는 사실. 그 흔한 양상추나 양파는커녕 소스나 드레싱도 없었다. 똘레랑스에 익숙한 프랑스인들이 샌드위치에 야채 몇 조각 넣어주는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아 실망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름에 충실한 샌드위치를 물과 함께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내 귀에 또렷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대학생 세 명이 나와 같은 샌드위치를 먹으며 정원 사이를 걷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야, 우리 지금은 학생이니까 이렇게 찌질하게 먹고 다니지만, 다음에 직장 다니면 여행 와서 이렇게 먹지 말자."

 

나는 속으로 몇 번씩 되뇌였다. '난 지금 찌질하게 먹는 게 아냐. 단지 학창시절 배낭여행의 추억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 날은 덥고 헛 웃음만 계속 나왔다. 

 

 

 

 

 

 

하지만 곧 맑은 하늘은 자취를 감추고, 먹구름이 드리운다.

 

 

 

 

수시로 찾아오는 먹구름과 비, 바람. 하지만 우중충한 하늘 빛도 파리 도심과 잘 어울린다며 위안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