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대有感

내 마음 속의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소년은 어른이고,
신해철의 음악을 듣는 어른은 소년이다.

 

 

오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왕'이라는 독선적인 캐릭터에, 체구도 보기 흉할 정도로 비대해진 안티 이미지의 신해철. 심지어 노래 실력도 록커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어린시절에 그는 가수이기 전에 나의 선생이자 롤모델이었다. 삶의 의미, 세상의 가치를 몰라 방황하던 나에게 그는 참 많은 가르침을 던져줬다. 그리고 '단언컨데'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Part Ⅰ 나의 자아와 마주하다

 

어린 시절 어느 날, 우연히 접하게 된 그의 노래가 나를 불렀다. 이제 눈을 뜨라고. 긴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니가 흘릴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거야  <해에게서 소년에게>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대열에서 벗어나라고, 그리고 나의 길을 가라고 말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은 정해져 있고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가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  <껍질의 파괴>

 

무엇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돼야 하고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각인시켰다.

 

그래 나는 남들과 달라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래 나는 남들과 달라 이제 너의 말을 해 봐  <나는 남들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따라 꿈꾸는 소년(Dreamer)이 되기로 했다. 비록 남들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고 하더라도 난 남들처럼 쉽게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내 삶을 그렇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고 믿었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The Dreamer>

 

하지만 그런 삶이 쉬운 건 아니었다. 연약한 자아는 늘 넘어지고 상처를 받았다. 내가 원하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 이중적인 모습에 좌절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때론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워했고, 내 삶에서 어떤 것을 남겨야 하는지 끝없는 질문을 되뇌이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냈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수 많은 내가 있지만 그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이중 인격자, 외로운 도망자, 하지만 해가 갈수록 삶은 힘들어  <이중인격자>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날아라 병아리>

 

병든자와 노인들은 한쪽 문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문으론 지금 태어난 자들 들어온다

단 한번도 멈춘적 없는 시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달려간다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다 말해야 하는가

내게 주어진 끝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찾았다 말해야 하는가  <Questions>

 

무엇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게 만든 그의 노래는 그저 나의 노래일 수밖에 없었다.

 

내 삶에 엄마는 처음 알게된 친구였어요

보다 더 많이 날 알았고 이해했죠

난 이제 또 다시 험한 길을 떠나려해요

각보다 세상은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나 쓰러져 세상을 배울 때엔 

날 위해 눈물 흘리지 말아요

저 나의 길을 지켜봐줘요  <Mama>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나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일으켜세웠던 그의 노래들이 그립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나에게 쓰는 편지>

 

그래 그렇게 절망의 끝까지 아프도록 떨어져
이제는 더이상 잃을게 없다고
큰소리로 외치면

흐릿하게 눈물 너머 이제서야 잡힐듯 다가오는 희망을 느끼지  <Hope>

 

 

Part Ⅱ  내가 살아갈 세상에 눈뜨다

 

'세계의 문'의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서정시 같은 나레이션이 아직도 나를 설레게 만든다. 세상의 문턱을 넘으려는 호기심 가득한 소년의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나오는 강렬한 메탈 음은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말이지 우리는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흙먼지 자욱한 찻길을 건너 숨 가쁘게 언덕길을 올라가면
단추공장이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에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멍가게 옆 복개 천 공사장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뿌연 매연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우리는 가슴 두근거리며 동경했었다
이제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나는 세계의 문을 지나왔다
그리고 너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문의 저편 내 유년의 끝 저 편에 남아있다  <세계의 문>

 

그는 늘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경고한다.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문명의 이기에 무비판적으로 의식을 내맡겨선 안 된다고 말이다. 정말 훗날... 지금의 나의 의식과 직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던가...

 

아직도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편안히 잠드는가
그래도 지금이 지난 시절 보단 낫다고 믿는가
무너진 백화점, 끊어진 다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누구도 비난 할 순 없다 우리 모두 공범일 뿐

발전이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누굴 위한 발전이며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세계의 문> 


특히 자본의 위험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불평등에 대한 질문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 등등. 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겐 넥스트가 반자본주의의 스승이었다.   

 

사람보다도 위에 있고 종교보다도 강하다
겉으로는 다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약한 자는 밟아버린다 강한자에겐 편하다
경배하라 그 이름은 돈, 돈, 돈  <Money>

 

Virtual reality, Cyber sex, 하지만 한편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The world of confusion, the age of no god
이제는 무엇에 기대어 살텐가
어디로 가는가 얼만큼 왔는가 혹은 제자리인가
거꾸로 가는가 알기는 아는가 이게 뭔 소린가  <The age of no God>

 

그리고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어린 학창시절, 방황과 우울로 점철됐지만, 삶에 대한 애착으로 낭만을 찾았던 그 시절. 그 시간들을 오늘 숨진 그와 넥스트가 함께 해줬다. 내 곁을 지켜줬다. 그래서 행복했다.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 와선 촌스럽다 해도 그땐 모든게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긴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  <70년대에 바침>

 

딥 퍼플과 핑크 플로이드을 동경하며 록커를 꿈꿨던 그와 현실이라는 한계의 그. 누구나 그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번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비아냥 섞인 평가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누구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던 내 유년의 영웅이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오늘밤 다시금 그를 추억해본다.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질때 마음 깊은곳에 숨어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마음 깊은곳에 그 영웅들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Hero>

 

 

 

 

 

'시대有感'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문 모음  (0) 2015.10.03
프란치스코, 시장만능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하다  (0) 2014.08.17
티스토리 遺憾  (12) 2012.07.08
독도를 부탁해..  (0) 2011.11.07
이유 있는 '애정남 신드롬'  (0)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