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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有感

이유 있는 '애정남 신드롬'


 



"요거 참 애매합니다. 자 이제 결론 나갑니다!"

요즘 개그콘서트의 '애정남' 코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만한 것들, 누군가 규칙을 정해줬으면 하는 애매한 것들을 속시원하게 정해주는 개그맨들의 재치가 기가 막히다.  물론 때론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개그 소재로서 아이디어 하나만은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코너가 이렇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애매한 것들 투성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인정하는 컨센서스의 폭이 얕다는 것이다. 저마다 생각하는 상식이 다르다 보니 상식이 상식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고 누군가 상식을 정리해줘야 하는 상황이란 얘기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사회에는 서로가 옳다는 주장만 난무한다. 다툼은 빈번한 데 이에 대한 합의나 타협은 없으니 온통 "법대로 하자"는 말뿐이다. '최소한의 도덕'인 법을 최대한 사용하고 있고, "쇠고랑 안 차고 경찰 출동 안 해도 되는" 일에 대해 쇠고랑 채우자며 경찰을 부르고 있는 꼴이다. 하기야 애매한 것들을 정치력으로 정리해줘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법적으로 애매한 것들(미디어법, 행정수도 등)을 헌법재판소 등 법적 판단에 맡기는 마당에 일반 시민들에게 '애정남'이 되어 달라고 하는 건 무리인 듯하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한국의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 합의의 과정을 소외시킨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가발전의 목표를 경제지표에만 내맡기지 말아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을 달성하는 것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애매한 것들을 상식으로 정리해줄 수 있는 애정남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다.